티스토리 툴바




친절과 미소는 나를 명품으로 만든다

톨스토이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모든 비난을 해결하고 얽힌 것을 풀어 헤치며
어려운 일을 수월하게 만들고
암담한 것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친절이다 라고 말했다.



이런 친절은
소극적인 행동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적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성공하고 싶다면
친절의 분량을 계속해서 늘려 나가야 한다.



친절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 바로 미소이다.
친절하면서 웃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린이에게 미소를 가르쳐라" 니체의 말이다.
미소가 흐르는 얼굴은 자신있게 보이며
미소가 흐르는 표정은 용기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인도의 간디는 비록 몸은 왜소 했을지라도
그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흘렀기 때문에
인도의 지도자로 존경을 받았다.



일찍이 도산 안창호 선생도
우리 민족에게 미소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그는 화내지 않고 웃으면서 사는 민족이
강한 나라를 만든다며 미소를 거듭 강조했다. 



요즘은 기업체나 연수원,
공무원들에게 친절교육을 많이 시킨다.
그때마다 빠뜨릴 수 없는 얘기가 웃음과 미소다.



21세기는 나를 상품화하는 시대다.
나의 미소는 나를 명품으로 만드는데
꼭 필요한 필수 요소이다.



우리는 맨 처음 상대를 대할 때
가장 먼저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본다.
우리의 첫 인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며
부드러운 말씨를 선택해서 쓴다면
우리는 미소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미소의 크기는
행복의 크기와도 비례한다.



** 좋은글 중에서 **
 



Posted by ☆행복전도사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쉬워하는 일들

일본인 의사인 오츠 슈이츠는 저서에서
1000명이 넘는 죽음을 앞 둔

그들이 죽기 전, 마지막 순간에 아쉬워하는 일들을
책으로 정리한 것을

옮겨본다. 

지난 해 5월 출간된 이 책은 최근 일본 방송에 소개되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하지 않았던 것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평소 자신의 몸을 좀 더 소중히 여겼으면 지금 내가 아프지 않았을 텐데…’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츠씨는 병이 생긴 뒤 들리는 것보다
병에 걸리기 전에 검사 등에 돈을 쓰는 편이 현명하다고 설명했다.


◆유산을 어떻게 할까 결정하지 않았던 것

오츠씨는 상당수의 말기 암 환자가 병원 침대에 누워 유산 상속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고 했다. 또 환자가 죽고 나서 재산 문제로 가족 관계가
나빠지는 경우도 많이 접했다. 오츠씨는 건강했을 때 이 부분에 대해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꿈을 실현할 수 없었던 것

많은 환자들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연주자를 꿈꾼 한 말기 암 환자는 병동에서 불철주야 연습해 처음이자
마지막인 연주회를 열었다. 오츠씨는 “그녀의 최후는 아주 편안해 보였다”
고 회고했다.

◆맛있는 것을 먹지 않았던 것

죽음을 앞둔 환자들은 식욕이 떨어지거나 최악의 경우 미각이
한다. 어느 말기 암 환자는 유명한 스시 집에 가서 마지막 만찬을
먹었지만 맛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츠씨는 건강을 잃기 전에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두라고 조언했다.


◆마음에 남는 연애를 하지 않았던 것

마음에 남는 연애는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큰 버팀목으로 작용한다.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던 환자들의 얼굴은 상당히 온화했다고
오츠씨는 덧붙였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것

독신인 채 일생을 끝내는 환자들은 반려자를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해
크게 후회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았던 것

대부분의 여성 환자들의 후회 중 하나다. 꿋꿋이 투병 생활을 하던
한 80대 노파는 손자가 휠체어를 밀어주는 다른 환자의 모습을 보고
“선생님, 저도 아이를 하나 낳을 걸 그랬어요”라고 불쑥 중얼거렸다고
오츠씨는 전했다.


◆악행에 손 댄 일

나쁜 일을 저질러 병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은 밤새 악몽이 시달리며 남은 생을 힘들게 보낸다.


◆감정에 좌지우지 돼 일생을 보내 버린 것

죽음이라는 큰 산 앞에 놓이게 되면 지금껏 해왔던 고민 등은 아주
사소한 일이 돼버린다.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감정적인 문제로
수 없이 말다툼을 했다는 사실을 후회한다.


◆자신을 제일이라고 믿고 살아 온 것

회사 경영자 등 사회적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 갖는 후회 중 하나다.
주위 의견을 전혀 듣지 않고 유아독존적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죽음’ 앞에 놓여 과거 오만했던 일들을
후회한다.

◆생애 마지막에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것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죽기 직전 “지금까지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의식을 잃거나
말할 틈도 없이 눈을 감는다. 건강했을 때 가족이나 친구 등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 두는 것이 현명하다.


◆그밖에 후회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마워요’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

가고 싶은 장소를 여행하지 않았던 것

고향에 찾아가지 않았던 것

취미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던 것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던 것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았던 것

사람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던 것

아이를 결혼시키지 않았던 것

죽음을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

남겨진 시간을 소중히 보내지 않았던 것

자신이 산 증거를 남기지 않았던 것

종교를 몰랐던 것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


Posted by ☆행복전도사

그 감동의 눈물 !

 

글은 이미 받아 보신 분들이 계실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한국 근대화의 바이블과도 같아 그 인기는
식지를 않고 있으며 읽으면 읽을수록 감동을 주는 오늘날
청소년들에게도 감동을 주는 글이라 여겨집니다.
다음에 나오는 5,60대 나이는 지금에 와서는 6,70대라야 맞을것 같군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젊은이들도 이 글을 보고 야단이라네요.
 
 
극소수엔 원수같은 이가 대다수 국민의 희망이었다
박정희(朴正熙) 大統領 追慕
 
(옮겨온 글)
 
두었든 자료와 신문에 새롭게 난것 편집하였습니다. 꼭한번 정독하시고
사진도 보시고 그때 그시절 회상도 해보시여 훌륭한 한분의 영도자가 어떻게 조국을,
동포를 사랑했나를 보세요
 
 
최근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눈물’이라는 글이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성세대의 땀과 노력,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의 일화를 담은 이 글에
20, 30대 네티즌들은 <우리 세대의 가벼움>을 반성하게 됐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났다’며 공감을 표명하고 있다.
이 글은 육군사관학교의 김충배 교장이
생도 교육에 사용해 그동안 ‘육사교장의 편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실제 작성자는 예비역 장성인 김유복(金遺腹·79)씨. 
그가 로터리코리아(한국로터리의 기관지)에 기고한 글은
“60대를 수구 골통이라 몰아붙이는 젊은이들이여!
이 글을 읽어 보렴”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서독 간호학교 유학생 출발인사차 예방1(65.3.24) 청와대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 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1963년 서독을 방문한 朴대통령이 두이스부르크 시민회관에서
광부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대통령을 보고 울고있는 간호원들(右下)>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 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쳐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싶어요. 부모님이 보고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 
 
강당에 입장하시는 박대통령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 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 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였다. 
 

광부들의 숙소 방문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행사도중 눈물을 닦으시는 육여사님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해'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됐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에르하르트 수상과 회담(1964.12.9) 수상관저
(사진 가운데 분이 백영훈 통역관)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 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5,6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 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는 우리들 신,구 세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 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 해주면서 함께 가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
 
 

Posted by ☆행복전도사